오늘날은 예전에 통용되었던 진선미(眞善美)라는 순차적인 위계서열이 붕괴되는 시대이다.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창되어 왔던 진리와 허위에 대한 기준,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은 이미 사라지고 상대적인 가치가 확산되는 시대이다. 절대적 가치에 기반한 신념은 역사적으로 무수한 피를 흘리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했고, 절대 진리와 절대 선이라는 신화는 이미 깨어진지 오래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시대에는 오히려 미학적 가치가 각광을 받는다. 이러한 현상들을 놓고 많은 학자들은 오늘날의 사회를 포스트모던 사회라고 이름 붙이기도 한다.
미학적 가치는 육체의 재발견에도 적용된다. 이것이 서구의 경우에는 이미 르네상스를 통해 이루어 진 적이 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에어로빅과 헬스를 통해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고도성장의 그늘 아래 혹사되었던 육체가 새로이 발견된다는 것은 필연적인 역사적 과정이다. 이 육체가 제대로 된 여가향유능력을 갖추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있었고, 80년대 이래 확산된 찬란한 밤 문화와 음주가무는 한 때 나름대로 삶의 리듬을 유지해주는 균형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삶의 행로에서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를 맞는 중년의 시기에 마라톤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고, 매너리즘에 빠져 무력해지기 쉬운 중년층에게 마라톤은 자기 육체를 통해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의미를 추구할 수 있는 장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모적인 상업적 여가문화를 탈피하여 주체적으로 삶의 의미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이 마라톤에는 열려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가동반자에 대한 부담도 없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오는 피곤도 덜면서 자족적 차원에서 축제적 환희를 맞볼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파생하는 문제도 또한 있다. 마라톤을 즐기는 달림이들에게 내포된 개인적 의미 추구가 자칫 나르시시즘적인 소시민적 사생활주의로 귀착되어 공적인 문제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점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모두 포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문제점이다. 하지만 마라톤에 심취하면서 공공의 문제에 둔감해질 수 있다는 점은 지적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이 시대는 사적인 이해를 추구하면서도 공적인 문제에 민감한 인간형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이러한 점이 마라톤에 심취한 달림이들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앞으로의 연구과제로 던져진다.
그리고 이 연구는 주로 마라톤 인구의 증가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였기 때문에 마라톤이 지니고 있는 장점이 부각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마라톤 중독으로 인한 폐해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의 연구는 보다 다양한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연구될 필요가 있다. 특히 마라톤 경력에 따른 일상생활의 변화가 새로운 연구과제로 던져진다.
* 주요어: 마라톤, 여가, 중년층, 중산층, 신부족주의, 금욕적 귀족주의. 참고문헌
김무경, 『자연회귀의 사회학』, 서울: 살림출판사, 2007.
김문겸, 『여가의 사회학: 한국의 레저문화』, 서울: 한울, 1993.
-----, 「술집의 사회사: 198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사회과학논총』 제17권(통권 25호), 부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1998.
마라톤온라인(http://marathon.pe.kr/), 2001년 5, 6, 8, 9, 10, 11월 설문조사; 2004년 2월 설문조사; 2006년 6월 설문조사; 2007년 1월 설문조사; 2008년 2월 14일 설문조사; 2008년 2월 16일 설문조사; 2008년 2월 16일 설문조사; 2008년 2월 17일 설문조사; 2008년 2월 20일 설문조사 (검색일: 2008. 2. 4-3. 25).
제 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