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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 인터뷰(CNN)
작성자 운영자
다음은 지난해 말 CNN과 가진 인터뷰로 어린시절, 가족, 자신의 나라와 달리기를 계속할 수 있는 동기부여에 대해 이야기했다. 게브르셀라시에는 여전히 하루 두 번, 일주일에 7일 훈련한다고 한다.

Q : 어린 시절은 어땠나?

A : 소와 양을 돌보면서 내일 힘들게 일했던 아이였다. 그리고 매우 진취적인 아이였다. 누가 어디에 가라고 하면 걷는 법이 없었다. 그냥 뛰었다. 뭔가를 더 빨리 하는 게 좋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앞서 일을 처리했는데 특히 젊었을 때 그랬다. 나는 항상 최고가 되고싶었다.

Q : 누구로부터 달리기를 하도록 영감을 받았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미루츠 이프터(Miruts Yifter)가 5천m와 1만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나는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 불과 7살에 지나지 않았고 1988년까지 기회도 없었다. 내 형이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나에게도 같이 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때가 87년말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대회에 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가 내가 육상을 시작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Q : 달리기가 자신의 몸에 적합하다는게 명확하게 나타났나?

신발이 없었을 때는 편했다. 즉 맨발로 달리는데 익숙해있었다. 신발을 신었을 때 힘들어졌다. 신발을 신고 달리는 것은 괜찮았다. 그러나 달리기를 시작했을 초기에 힘들었다. 나가 살던 시골에서는 맨발이 더 편한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잘 맞지 않은 신발보다는 맨발이 더 좋다.

Q : 초가집에 사는게 힘들었나?

그렇다. 아주 힘들었다. 지금처럼 사는 것에 익숙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우리는 괜찮았다. 우리는 매우 행복한 가족이었다. 물론 지금 옛날처럼 살아라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Q :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우리는 아주 대가족이었다. 12명 가족이었다. 나는 5명의 형제와 4명의 자매가 있었다. 내 생활에 대해 말할 때 지금 (그쪽) 생활을 보는 게 훨씬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특히 시골에 사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는 게 좀 어렵다. 전통적인 생활양식, 즉 농사를 지으면서 열심히 일한다. 오늘의 내가 되기전까지는 처음부터 열심히 살았다. 사는 게 일종의 투쟁이었고 싸움이었다.

내 아버지는 달리기가 분별있는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달리기는 그냥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물론 달리기는 내게 재미임에 동시에 인생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다. 아버지에게도 달리기를 권했는데 그는 거부했다. 내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 달리기를 못하게 했다. 달리기를 멈추고 일을 하라고 했고 달리기는 평범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아버지에게 "그들 처럼 되게 해달라"고 했을 때 그는 "그만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달리는 형과 함께 할 기회를 잡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Q : 달리기 생활에서 최초의 위대한 순간을 꼽으라면?

처음 느낀 위대한 순간은 내가 학교에서 달렸던 87년이었는데 1500m에서 우승했을 때이다. 나는 최연소였다. 나는 재빨리 그룹을 치고나왔는데 경기장의 모든 사람들은 이 가난한 소년이 (힘이 빠져) 어딘가에서 곧 멈출 것이라든가, 죽을지도 모른다든가, 곧 기진할 것이다고 말했다. 운동장을 한 바퀴씩 돌 때마다 20m, 30m, 50m씩 그룹과 격차를 벌렸다. 마지막에는 겨의 100m 정도 격차를 벌렸다. 내가 골인하자 모든 관중들이 나를 보러 몰려들었다. 큰 아이들과 대항해서 이겼기 때문에 매우 놀랐고 나를 헹가레쳐주었다. 그후 나는 자신감을 가졌다.

Q :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왜 울었나?

내 꿈은 올림픽 참피온이 되는 것이었다.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후 꿈꿔왔던 것이다. 16년만에 그 꿈이 실현되었다. 아틀란타 올림픽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순간이었다.

Q : 그러면 2000년 시드니에서는?

모두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내가 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레이스에 나갔고, 특히 나와 폴 터갓의 대결같은 멋있는 순간을 맞았다. 정말 특별한 순간이었다. 아직도 그 비디오를 보면 매우 두려움을 느낀다. 지금 어떻게 되었지? 내가 이겼나 졌나? 물론 내가 그 레이스를 이겼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때문에 매우 특별한 순간이었다. 내가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왔을 때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공항에서 시내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디스 아바바 인구의 절반 가량이 나를 맞이하기위해 거리로 나왔다.

Q : 왜 당신은 성공했다고 생각하나? 그게 물질적인것인가 아니면 정신적인 것인가?

열심히 노력한 것이 한 이유이다. 성공하게 된 비결은 내 환경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어렸을 때 (가난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러한 생활양식에서 벗어났을 때 이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내 어릴 때 환경으로 인해 내가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Q : 당신의 성공은 하느님의 덕택이라고 생각하나?

무언가의 존재를 믿을 때 당신 자신의 존재도 믿게 된다. 나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있다. 나는 교회에도 가고 기도도 한다. 나는 단순히 하느님에게 기도할 뿐 아니라 동시에 내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우리의 몸은 항상 여러분이 요구한 것을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 믿음이 중요한 게 그것때문이다. 나는 종교인이다. 나는 정통 크리스천이다. 내 가족들은 나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Q : 달릴 때 무슨 생각이 드나?

가끔은 가족, 사업, 어린시절, 시골(고향) 등을 생각한다. 오늘 내가 여기에 있고, 내일 훈련할 때 오늘 여기에서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Q : 그리고 누군가를 이기려할 때는 무슨 생각을?

다른 선수를 앞질러가는 현명한 방법을 모색하고 그의 호흡을 듣고 본다. 그리고 그의 발과 다리도 주시한다. 그가 어떤가? 피로한가, 아니면 아직도 여전히 힘이 남아있는가? 이 km 지점에서와 저 km 지점에서의 그의 차이는 어떤가? 물론 때때로 가족이나 아이들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Q : 그만둘 시기는 언제쯤으로 생각하나?

내 은퇴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은퇴를 쉽게 말할 수 없다. 누가 만약 "2년후에 그만두겠다"라고 하면 그는 이미 은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이 내가 은퇴계획이 없는 이유이다. 그 시기는 자연스럽게 올 것이다. 내가 우승을 하지못할 때 나는 달리기를 멈출 것이다. 내가 정상의 위치를 잃어버렸을 때 내가 대회에 나갈 이유가 없다. 나는 달리기를 멈추고 다른 일을 할 것이다.


Q : 에티오피아는 당신에게 매우 중요한가?

나는 내 나라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투자도 많이 하고 있다. 내가 유럽에서, 미국에서 번 돈을 여기에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 내가 돈을 더 벌면 에티오피아에 더 많이 투자할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매우 빨리 변하고 있는 나라이다. 나는 그 차이를 이미 보고 있다. 5~6년전에는 이 나라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제대로 된 도로도 없었고 인프라도 없었다. 지금 많은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이 10-20년후에 에티오피아는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꿈꾸고 있는 것을 실행하기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시골에 가면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특히 우리는 시골을 변화시켜야 한다. 인프라를 더 구축해야 하고 시골 사람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와 사람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충분한 교육을 하면 틀림없이 나라는 바뀌게 될 것이다.

Q : 주위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돈이 많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나?

그래서 나는 그 돈을 나누려고 한다. 내가 만약 이기적이라면 왜 그 돈(상금)을 모두 에티오피아로 가지고 오겠나?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기 싫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일도 준다. 나는 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가난한) 사람을 지원함으로써 나는 지금 내가 가진 것을 가지게 되었다.

내 회사에 일하는 직원을 400명 가지기가 쉽지 않다. 나는 내 국가를 이야기할 때 이는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월급을 버는 것이다. 내가 투자하는 모든 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다. 나는 20년전 나와 똑 같은 사람이다. 나는 내 성격을 바꾸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에티오피아 국민의 생활과 내 가족의 생활을 바꿔보고 싶다. 물론 모두를 위해 일을 할 수 없지만 내 몫을 할려고 노력한다.

Q : 정치에 입문하고 싶나?

그렇게 하고 싶지만 정치라는 게 쉽지않다. 지금은 정치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상황이 저절로 발생하는 게 더 좋다. 여전히 나는 이런 (가난한)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할 계획이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이 정치라면 왜 마다하겠나?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내가 정치계에 뛰어듦으로써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왜 마다하겠나? 그러나 지금은 정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운동을 하기때문이다. 그리고 사업도 하고 있다. 교육사업이 이 국가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건설과 같은 사업도 중요하다.

Q : 자신이 영웅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영웅이 아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로부터 피하고싶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만약 내가 숨으면 사람들이 나에게 몰려올 것이다. 여러분이 그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들은 여러분에게 올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옳다 거르다고 말할 수 없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한다. 나는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Q : 케네니사 베켈레가 성공하는 것을 지켜보는 느낌은 어떤가?

나는 정말 매우 특별한 것을 느낀다. 나의 업적중에 하나가 그를 육상계에 입문시킨 것이다. 그는 나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내가 그와 같은 선수를 만들어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 역할을 잘 했다고 생각한다. 34세의 나이에 나는 아직도 육상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달리기는 나의 인생이기도 하고 케네니사와 같은 다른 사람을 위한 인생이기도 하다. 정말 멋있다!

[사진]2003년 파리선수권대회 10000m에서 우승한 베켈레 선수를 축하해주고 있다. 04년 시드니올림픽에서도 베켈레는 우승을 차지했다.

관련자료 :
▶ 나는 2:03대 완주도 가능하다
▶ [인명사전]게브르셀라시에 누구인가?
▶ [동영상]게브르셀라시에의 인생과 달리기

출처 : CNN(www.cnn.com/revealed)

뻐미파파 단순히 최고의 육상선수로만 인지하고 있다가, 게브르셀라시에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역할모델로 삼아야 할 듯.....^^ 감사합니다.
02/13   
나의삶 마이라이프 부드런ㅁ 나의삶ㅁ 부강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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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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