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중년층의 여가문화
3. 중년층과 마라톤
4. 마라톤의 사회학적 함의
5. 맺음말

2. 중년층의 여가문화

1) 한국 여가문화의 변천: 새로운 여가양식의 등장

여가환경이 열악했던 1960년대, 70년대에는 여가활동 자체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기존의 전통오락은 시의성을 상실하고 도시 환경에서 생성된 새로운 대중문화가 일반인들의 여가생활을 지배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대중문화는 보편적 호기심을 촉발시키며 여가 시장의 외연을 확장해 간다.

당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영화와 레코드였고, 매스 미디어는 라디오와 흑백 TV였다. 볼 거리가 부족했던 흑백 TV시절에 프로 레슬링과 프로 권투가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그 열광은 세계타이틀전이 벌어진 이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람까지 있어서 자주 뉴스거리로 등장하곤 했다. 태국의 킹스컵, 말레이시아의 메르데카컵, 우리나라의 박스컵 등 국가 대항전 아마추어 축구도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딴 양정모는 국민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또 국위선양을 한 스포츠 선수가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도 빠질 수 없는 1970년대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고스톱 또한 ‘국민보건체조’라고 불러질 정도로 기성세대가 즐기는 가장 보편적인 여가양식이다. 이런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명절 때만 되면 고스톱 추방 캠페인을 벌일 정도였다. 또한 2차, 3차로 이어지는 술 문화 또한 빠질 수 없다. 이러한 단순오락적인 여가문화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1980년대 들어와서 이다.

우리나라의 여가문화는 1980년대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80년대 초반 프로 야구를 필두로 프로 씨름, 프로 축구 등이 창설되면서 한국 여가문화에 새로운 장이 개척되고 다양화된 것이다. 또한 86 아시안 게임, 88 서울 올림픽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스포츠 열기는 매우 뜨거워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레저와 스포츠가 결합된 ‘레포츠’라는 용어가 탄생하고, 공원과 약수터 등지에 수많은 생활체육시설이 건립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80년대 이후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여가문화가 대중소비주의와 접목한 것이다.¹⁴⁾ 이것을 추동한 가장 핵심적인 매개체는 자동차였다. 자가용의 대중화는 여가문화의 판도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산과 강에서 고기 굽고,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행태가 전국적으로 보편화된다. 이에 따라 도시 인근과 계곡 및 하천에는 자가용 소유자를 대상으로 포괄적인 상권(商圈)까지 형성되고, 각종 온천 휴양지 및 관광지가 개발된다. 또한 도시 내․외각에 자가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여가산업이 발달하는 데, 그 대표적인 것이 외식산업의 발달이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소비적인 여가문화를 보편화시킬 수 있는 국민 소득수준의 전반적인 향상에 기인한다.

특히 국민 소비능력의 향상은 여가시간을 겨냥한 각종 다양한 여가 상품의 개발을 가속화시킨다. 그것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대도시 중산층을 대상으로 형성된 새로운 여가 양식의 출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는 골프, 스키, 에어로빅, 헬스, 수영 등의 스포츠 분야와 별장 및 콘도미니엄, 주말농장, 국내 및 해외 여행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새로운 여가의 소비 능력을 갖춘 인구층을 대상으로 전국적으로 고급 전문 레저산업이 확산되고, 재벌기업들의 여가산업 진출이 두드러지는 것도 1980년대 이후의 특징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 국민 여가문화는 대중 소비주의와 접목하면서 폭발적인 붐을 이룬다. 여기에는 3저 호황이라는 경제적 변수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여가산업도 확장 일로의 길에 접어든다. 그 동안 억압되었던 잠재된 욕구들이 폭발하는 시점이 바로 이 시기인 것이다.

또한 1982년도에 시행된 야간 통행금지의 해제는 우리나라 밤 문화의 판도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¹⁵⁾ 술집과 술 기호의 고급화 추세와 함께, 이른바 향락․퇴폐업소의 폭발적인 증가 현상이 그것이다. 이것의 가장 대표적인 실례를 우리는 카페와 퇴폐 이발소, 성인 나이트클럽의 증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성인들이 주로 출입하는 디스코테크나 나이트클럽에서는 각종 퇴폐적인 쇼, 예컨대 뱀쇼, 샤워쇼, 황진이쇼, 각설이쇼, 어우동쇼, 홀딱쇼 등등 각종 명칭을 붙여 일종의 스트립쇼를 하는 곳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그리고 80년대 중반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가라오케는 노래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기질과 맞물려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다.

80년대 후반부터 더욱 확산된 일부 부유층의 사치성 여가활동과 대도시 전반에 폭넓게 자리잡은 향락․퇴폐업소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높아지자, 급기야 정부에서는 ‘과소비 추방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1990년도에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한다. 이러한 향락업소나 가라오케와 노래방, 나아가 고스톱의 전국적인 열풍은 기성세대 여가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노동편향적 삶에서 파생된 여가향유 능력의 결여는 단순오락적인 여가가 친화성을 지니게 한다. 즉 노동의 영역에서 오는 중압감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기회와 훈련을 차단하고, 단지 스트레스 해소와 긴장완화의 기능을 가진 여가가 선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리스만(Riesman)에 의하면 여가향유능력(leisure competence)은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장인재능(craftsmanship)과 소비재능(consumership)이 그것이다. ¹⁶⁾ 장인재능은 육체를 이용하여 무엇인가를 실질적으로 해 낼 수 있는 숙련도를 의미한다. 소비재능은 어떤 대상을 느끼고, 감식하고, 식별할 수 있는 안목(심미안)을 의미한다. 이러한 두 가지 능력이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의 청년층과 중년층은 대체로 결핍되어 있었다. 근대화의 주역인 이들은 고도성장의 일 중심 사회에서 여가는 사치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1990년대에 일어난 여가문화의 변화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그 전반적인 개요만 살펴보기로 하자. 1990년대 이후에 일어난 여가문화의 변화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으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 가족지향적 가치관의 영향으로 가족 단위 레저 생활이 증가한다. 이렇게 된 데는 마이카의 실현과 리조트 산업의 발전으로 가족 동반 리조트 체재형 여가생활이 한층 용이해졌다는 점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둘째, 모험과 직접 체험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다양한 여가 패턴이 성행한다. 예컨대 래프팅, 트래킹, 스킨스쿠버 다이빙, 행글라이딩, 암벽타기, 고산 등정 등 매우 다양한 신종 레저스포츠와 배낭여행이 등장한다. 셋째, 자연친화적 여가 유형이 증가한다. 여기에는 물질문명의 범람 속에서 억제되었던 자연성을 회복하고 자연과의 교류를 통해 더욱 쾌적한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한 목적이 담겨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행락․산책, 등산, 낚시, 주말 농장, 삼림욕 등이 증가하고, 특히 2000년대에는 조깅과 마라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넷째, 젊은 층을 중심으로 극소전자기계 문명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여가 유형이 크게 확산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대중적인 보급으로 게임산업이 크게 확장되고 각종 동호회가 활성화 된다. 그리고 케이블 TV를 시청하는 인구도 크게 증대한다.

2) 중년층의 일반적인 여가행태

여가활동의 의미는 어느 정도의 빈도로, 얼마 전부터 행해지고 있는가,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 실행되고 있는가(장소, 시간, 설비, 도구 등), 또 어떤 방식으로 개인이 행하고 있는가와 같은 수많은 변수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통계자료는 극히 해석하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이 통계자료들은 전반적인 밑그림을 그리는 기초자료로서의 의미는 있다. 이 절에서는『2006 여가백서』와 『2006 체육백서』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중년층의 일반적인 여가행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2006 여가백서』에서, 지난 1년간 참여해 본 여가활동 가운데, “여가시간 동안 주로 하는 여가활동” ¹⁷⁾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역시 TV시청(68.3%)이 가장 많고 그 다음에 잡담/통화하기(23.6%), 게임(23.4%), 목욕/사우나(22.9%) 등의 순으로 랭킹 12위권에 속하는 여가활동의 유형은 <표 1>에 나타난 바와 같다. 이를 세부적으로 연령층 별로 볼 때 2006년 현재 우리나라 중년층(40대와 50대)의 여가활동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다른 연령층에 비해 게임, 영화보기, 인터넷 서핑이나 채팅 등에 참여하는 비율은 현저히 낮은 반면, 목욕과 사우나, 계모임 같은 사교모임에 참여하는 비율은 현저히 높다. 그리고 음주와 신문·잡지보기, 산책 등의 비율도 높은 편이다.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는 것은 중장년층이 처한 생활조건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다 보니 게임, 인터넷 서핑/채팅 등에 참여하는 비율은 낮고, 아직 왕성한 사회활동을 전개해야 하므로 음주와 신문/잡지보기의 비율이 높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을 찾게 되고, 산책이나 목욕/사우나를 통해 건강을 돌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연령에 따른 여가의 목적을 보면 40대 이후의 연령층에서 ‘건강 유지’는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표 2> 참조).

그러나 여가시간 동안 주로 하는 여가활동의 종목과 그 활동에 대한 선호도는 별개의 문제다. 실제 또 다른 조사에서는 실행하는 여가활동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것은 ‘운동 및 스포츠’이고, 2006년도에는 20.5%로 TV시청(18.1%)과 역전되는 현상까지 발생한다(<표 3> 참조).

한편 <표 1>에서는 ‘지난 1년간 여가시간 동안에 주로 하는 여가활동’을 개방형으로 조사함으로 인해 보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여가활동의 실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좀 더 포괄적인 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16개의 여가활동의 항목을 제시하고 ‘지난 1년간 1번 이상 참여한 경험이 있는 경우를 모두 표시’하게 한 결과 TV시청이 93.1%로 1위를 차지하였다. ¹⁸⁾ 그 다음이 목욕/사우나(79.6%), 외식(73.7%), 낮잠(67.0%), 잡담/통화하기(66.1%), 신문/잡지보기(61.1%), 쇼핑(60.0%), 노래방가기(58.0%), 산책(57.5%) 등의 순으로 나타난다. 이 글의 목적상 우리는 116개의 항목 중에서 ‘스포츠 참여활동’ 부문에 한정해서 그 순위를 살펴보기로 하자. 스포츠 참여활동 부문에서는 42개의 항목이 제시되었는데 줄넘기(18.7%), 축구(18.3%), 헬스(17.4%), 맨손체조(17.0%), 마라톤/조깅/속보(16.8%) 등의 순으로 나타나 걷기와 달리기를 하는 인구 층이 매우 두텁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표 4> 참조).

걷기와 달리기를 즐기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자연히 이와 관련한 동호회의 수도 증가한다. 2006년 현재 육상/조깅/마라톤 동호회는 1,404개로 기존에 있는 생활체육동호회 중에서 랭킹 15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회원수는 46,374명에 달한다(<표 5> 참조). 그런데 이 수치는 단지 등록된 동호회와 거기에 가입된 회원에 한정된 것으로 실제로는 더 많은 마라톤 동호회와 달림이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조깅과 마라톤은 혼자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4) 김문겸, 『여가의 사회학: 한국의 레저문화』, 서울: 한울, 1993, 195-196쪽.

15) 김문겸, 「술집의 사회사: 198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사회과학논총』, 제17권(통권 25호), 부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1998, 133-134쪽.

16) David L. Sills eds.,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Vol. 9, The Macmillan Company & The Free Press,, 1974, pp.252-253.

17) 조사 응답자는 여가시간동안 주로 하는 여가활동에 대해 개방형으로 최대 5개까지 응답하였으며, 이를 집계하여 통계적으로 계산한 것이다.

18) 『2006 여가백서』에서 여가활동의 내용은 모두 6개의 분야에서 116개의 항목으로 조사되었다. 문화예술 관람활동(9개 항목), 문화예술 참여활동(9개 항목), 스포츠 참여활동(42개 항목), 스포츠 관람활동(2개 항목), 관광활동(18개 항목), 취미오락활동(24개 항목), 휴식활동(6개 항목), 기타 사회활동(7개 항목)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