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우세를 제쳐놓고 좀 더 큰 그림을 보면서 마라톤의 엄청난 변화를 추적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2003년 폴 터갓(Paul Tergat, 케냐)이 처음으로 2시간 5분벽을 깼을 때 앞으로 일어날 일, 즉 기록경신의 전조로 생각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것과 같은 즉각적인 기록 진화가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2004~2006년사이의 기록은 터갓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갔으며 sub-2:07 수립자의 수도 줄어들었다. 평균기록도 느려졌으며 그 아무도 2시간 5분대에 접근하지 못했다.
이 "터갓 효과(Tergat-effect)"는 별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고 기록경신에 수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마라톤 기록경신은 예견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1990년대 트랙에서의 엄청난 규모의 세계기록이 양산되었고 이들이 거리를 늘려 마라톤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불세출의 트랙스타 폴 터갓과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마라톤으로 진출했을 때 그 장벽은 필연적으로 깨질 수 밖에 없었다.
게브르셀라시에가 좀 시간이 걸린 반면, 터갓이 먼저 성과를 올렸다. 그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을 유지하며 매년 기록을 경신해갔다. 하지만 2007년 2:04:26의 기록으로 세계기록을 수립하면서 큰 돌파구를 마련했다. 이것이 기록의 홍수를 불러오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2008년 게브르셀라시에와 완지루의 견인으로 새로운 세계기록 수립
다음해인 2008년에 게브르셀라시에는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는 드디어 2시간 4분대를 깼고 연달아 다른 주자들도 2시간 6분대를 깨기 시작했다. 이는 과히 '게브르셀라시에 효과(Gebrselassie-effect)로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 소개한 그래프에는 나타나있지 않지만 2007년 게브르셀라시에는 sub-2:06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였다. 하지만 2008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5명의 선수가 2시간 6분이내의 기록을 수립했는데 이는 2003년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2008년은 게브르셀라시에가 2:03:59의 기록으로 4분벽을 깬 기념비적인 해이기도 하다.
2008년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성적은 게브르셀라시에 뿐만 아니다. 작년에 사고로 사망한 케냐의 사무엘 완지루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기록한 성적은 오늘 마라톤 발전의 진정한 촉매작용을 한 것일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8월의 덥고 습한 베이징에서 그와 같은 용기와 대담함으로 밀어붙힌 완지루의 레이스는 마라톤을 극도의 조심성과 절제를 요구하는 스포츠에서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레이스도 잘 통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스포츠평론가인 짐 훠스틀(Jim Ferstle)은 시카고 마라톤에 앞서 게재한 칼럼에서 이를 "완지루 효과(Wanjiru-effect)"라고 했다.
되돌아보면 2008년이전 케냐는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세계 장거리 대회를 모두 석권하고 있으면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고 완지루가 매우 드문 전략으로 그 강박감에 대응했다. 그럼 그 전술은? 빠르고 초반부터 치고나가 악조건을 극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살인적인 그의 초반 페이스를 경고했지만 그는 이를 초반에 경쟁자들을 떨치는 방법으로 생각했다. 이는 역대 가장 우수한 레이스의 하나로 남아있다. 다음 세계 대도시 마라톤을 관전할 때 케냐 선수가 30km에서 세계기록 페이스로 치고나가는 선수를 보면 이는 사무엘 완지루의 영향이라고 보아도 좋다.
이는 아마 세계에 마라톤 레이스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보여준 완지루와 2시간 3분대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 게브르셀라시에의 복합적인 효과이고 이는 새로운 기록 경쟁의 세계에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완지루 선수가 작년에 사망함으로써 이 두 선수가 맞붙는 '세기적인' 레이스는 이뤄지지 못했다. 게브르셀라시에는 베를린 마라톤측에 완지루가 참가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계약하는 등 게브르셀라시에쪽에서 완지루와의 대결을 회피했다는 인상이 깊다. 이들이 맞붙었다면 두사람의 영향력이 시너지효과를 냈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2009년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케냐 출신 두명이 막판까지 정면승부를 벌여 똑 같이 2시간 04분 27초라는 기록으로 완주했으며 같은 해 또 다른 6명이 2시간 6분대를 깼다. 모두 합해서 그해 6명이 sub-2:06의 기록을 내면서 기록에 대한 물꼬가 터졌고 이 기세가 이어져 선수들이 - 대부분 케냐출신 - 무수한 기록을 쏟아져 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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